갤럭시 노트8, 내 기억 속의 노트가 아니다
갤럭시 노트를 다루는 삼성의 개발자나 관리자가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24일 자정(한국 시각) 뉴욕에서 진행했던 언팩만 놓고 보면 이제 노트를 제대로 이해하는 개발자나 관리자가 삼성 안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스마트폰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이었으나 결코 동일시되지 않는 차별성을 유지해 왔던 갤럭시 노트가 이번 발표 행사에서는 마치 그냥 비싼, 평범한 스마트폰의 범주 속으로 들어가 버린 탓이다.
불과 1년 전에 일어났던, 불타는 갤럭시 노트7의 소동에도 불구하고 갤럭시 노트가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 것은 기뻐할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1년을 참고 기다린 팬들에게 돌아온 노트는 8이라는 숫자로 바꿔치기 한 것 이상의 새로운 제품으로 여길 것인지 미지수다. 1년 전보다 더 나은 성능, 더 나은 스마트폰이지만, 더 나은 노트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변화의 본질은 들어 있지 않아서다.
나는 갤럭시 노트8이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관점에서는 몇몇 괜찮은 진전이 있다고 본다. 어느 순간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갤럭시 노트는 S 시리즈의 내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몇몇 부가 하드웨어와 경험을 바꿀 기능을 추가하고 펜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으로 판매를 해온 제품이다. 갤럭시 노트8도 마찬 가지다. 혹시나 모를 만약을 위해 배터리 용량을 덩치에 비하면 너무 줄인 게 아닌가 싶긴 하나 갤럭시 S8 플러스의 기본 제원에 듀얼 카메라와 6GB의 램 등 몇몇 보강된 부분은 좀더 완성도 높은 갤럭시 S8 플러스를 내놓은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갤럭시 S8 플러스의 완성도를 높이고, 그래서 ‘스마트폰의 야수’라고 칭했다 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마트폰의 관점에서 보는 결론들이다. 세계 최초라는 듀얼 OIS 적용 듀얼 카메라나 6GB 램 같은 특징들 역시 삼성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보다 스마트폰 업계의 흐름에 따라가고 기술적 보완을 더한 점에서 다른 스마트폰과 쉽게 비교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상황이 된 것이다. 갤럭시 노트8이 다른 스마트폰과 쉽게 비교될 수 있게 된 사실이 가장 슬프다.
왜 그럴까? 사실 그 이유는 갤럭시 노트8의 발표 초반에 이미 다 나온 이야기다. 삼성은 대화면에 펜이 있는 갤럭시 노트를 처음 공개했을 때 온갖 조롱을 받았으나 결국 이 두 가지가 패블릿 시장을 확대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음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두 가지 중 하나인 대화면은 더 이상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화면을 가진 스마트폰은 너무 많고, 갤럭시 노트는 화면을 기준으로 스마트폰을 볼 때 그 중에 하나로 보일 만큼 넘치고 넘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노트를 선택하고 노트7의 발화 사태에도 굳건한 팬들이 남아던 데는 S펜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아직 수많은 스마트폰 제조사가 갤럭시 노트처럼 펜을 접목하려고 그리도 애썼음에도 S펜의 성능, 기능성 만큼은 따라잡지 못하고 대부분 중도에 포기했다. 결국 갤럭시 노트의 유일하게 남은 무기는 S펜, 그리고 S펜을 쓰는 경험만 남은 상황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삼성이 딜레마에 빠졌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써 매력을 어필하는 것과 펜 전문 디바이스로써 영역을 공고히 다지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다. 사실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항상 S시리즈보다 부가적인 부품이 들어가는 더 비싼 스마트폰이었다. 더 큰 화면과 펜은 기본, 홍채 인식 같은 부품의 추가로 인한 비용 상승 요인이 항상 존재했고, 비싼 가격은 갤럭시 노트의 확대에 발목을 잡아 왔다. 새로운 갤럭시 노트가 출시되는 그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항상 갤럭시 S 시리즈가 더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은 S펜이 이용자의 선택에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릴 여지는 충분했던 것이다.
갤럭시 노트 팬의 입장에서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 제조사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관점에서 갤럭시 노트를 재정의했을 수 있고, 그 문제를 이번 갤럭시 노트8 발표에서 그대로 드러낸 것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은 팬을 위한 갤럭시 노트8이라는 입바른 소리를 했지만, 정작 S펜의 소프트웨어 사용성만 강조했을 뿐 S펜 그 자체의 하드웨어적인 가치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삼성은 노트7까지 S펜의 감도나 방수 같은 성능 향상이 있던 것을 보면 이번 S펜은 진화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S펜의 진화를 말하지 않는 갤럭시 노트8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본체의 변화 뿐이니 이것이 다른 스마트폰과 비교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삼성이 S펜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S펜은 소프트웨어를 상당히 보강했고 재미있는 기능도 많이 담았다. 단지 새로운 기능들이 S펜 자체를 신선하게 만들 만큼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 이전에 S펜에서도 구현이 가능한 기능들처럼 보이지 않게 포장했어야 하지만, S펜의 진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를 강조하는 데 한계가 드러나 버린다.
그 한계를 넘기 위해서 굳이 S펜을 기능이나 성능 측면에서 더 진화시켜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들 것이다. 하지만 노트 마니아들은 아직 S펜을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더 많은 요구 사항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펜은 쓰거나 그리는 감성적 도구라는 점에서 여전히 감성적인 진화는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를 테면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과한 S펜의 느낌을 개선하거나 S펜을 쓸 때의 감촉을 조정하는 게 대표적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은 기능적인 요구도 있다. S펜의 펜 끝 쪽에 대한 지우개 기능, S펜의 버튼에 대한 역할과 활용을 더 확대해 달라는 요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번 발표를 본 뒤 나는 ‘본체만 바뀐 갤럭시 노트7 두번째 에디션’ 같다는 한 줄 평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S펜의 감성적 진화와 기능, 성능의 보완을 통해 그동안 갤럭시 시리즈에 부족한 감성 마케팅을 작동시킬 수 있었지만, 갤럭시 노트8의 발표만 보면 이 장점은 찾기 어려웠다. 여기에 몇 명이나 동의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난 해에 본 S펜과 같은 느낌을 받은 이라면 조금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갤럭시 노트8이 공개된 뒤 화려한 수식어로 장식된 수많은 기사를 보며 진심으로 갤럭시 노트8 개발자들이 즐거워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그들이 다시 노트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실제 노트 마니아가 원했던 제품인가를 좀더 깊이 고민하길 바라는 것이다. 언팩 행사가 끝난 뒤 몇몇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발표 현장과 정말 다른 정 반대의 반응들을 봤을 때 노트가 갖고 있는 개성의 실종에 대한 한탄과 일반 스마트폰과 비교당하는 적나라한 현실이 너무도 서글퍼 보였다. 차라리 ‘노트는 끝났다’는 선언이라도 했다면 덜 슬펐을 테지만, 일반 스마트폰으로서 비교당하는 노트는 이제 생명을 다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는 게 아닌다.
나는 늘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삼성 스마트폰은 갤럭시와 노트라고… 그렇게 노트를 특별하게 인식해 오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갤럭시 노트8 이후로 그런 분류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S펜이 들어간 갤럭시 S8+가 아니다. 하지만 삼성은 내 기억 속의 노트를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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