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eko (개코) [Dynamic Duo] - Redingray
세상을 살아간다. 누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한다. 모든 행동과 현상에는 다 이유가 있듯이, 이 앨범은 우리가 모른 채 지나쳤을 '그것'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파고든다. 누군가의 남자로, 친구로, 아들로, 아버지로 살아가는 모두의 얘기다. 결국 믿을 건 자신 뿐이라지만,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이 겪는 여러 감정들은 가볍게 혹은 무겁게 음악이란 공간에서 표출된다. 황량하리만큼 메마른 회색도시에서 드러나는 사랑, 이별, 분노, 감동, 질투.. 인간의 붉은빛 감정을 표현한 다이나믹듀오 개코의 솔로 앨범 다.
회색과 빨강. 어울리지 않는 두 컬러의 조합은 앨범의 제작과정과도 닮았다. 지난 10년 이상의 활동기를 거치며 작업했던 결과물, 다이나믹듀오로는 풀어내기 힘든, 개코의 다소 개인적인 얘기들을 경험 혹은 혼자만의 판타지로 풀어냈다. 애초에 의도치 않은 각각의 결과물이기에 통일성을 떠나 '불균형 속 조화'를 이루는 식이다. 회색과 빨강의 조합처럼. 블랙앤화이트가 섞여야 완성되는 ‘회색'의 중립적인 관점에서 남자의 욕망과 환상 등이 관찰자적인 시선에서 표현됐다.
■ 이야기의 힘. 관찰자 개코의 상상 훔쳐보기
자, 여기 서울이란 도시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화려한 밤의 여자 그 외로운 이면을 위로하고('제정신이 아냐') 성형을 좇는 여성들과 자기과시욕에 사로잡힌 보통 남성을 대비시켜 물음표를 던진다.('세상에') 또 자동차란 한 공간에 놓인 아버지, 어머니, 아들 3명 각자의 생각을 통해 단절된 가족과의 대화를 은근하게 내비치기도 한다.('은색 소나타')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차이에서 포착한 섬세한 시선도 인상적이다.
타이틀곡 '화장 지웠어'는 밀당하다 지친 여자의 마음을 끝내 눈치채지 못한 남자에 대한 얘기. 썸남썸녀의 밀당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색다른 해석이다. 더불어 더블 타이틀곡 ‘장미꽃’ 역시 사랑의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맞춰가면서 자신의 색을 잃어가는 여자들을 주제로 한 이 곡은 '너는 너대로 충분히 예쁘니깐 날 너무 신경 쓰지마. 친절하지 않아도 돼.’라며 다독인다. 이처럼 그는 모두가 당연시 여기던 주제를 쉽게 지나치지 않고, 무엇 하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주제를 던져주고 모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는 개코만의 화법이다.
도시인들의 옅은 웃음기 뒤로는 묘하게 기분 나쁜 웃음이 띄워져 있다. 속고 속이는 거짓말이 난무하고 사랑의 표현도 인스턴트에 가까울 정도로 가벼워진 요즘, 세상을 향해 더욱 뒤틀린 조소를 보이면서도 철저히 관찰자로서의 이야기꾼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 음악이다. 때론 자극적이며 지극히 감상적이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그의 세계관이 슬금 드러난 노랫말은 앨범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다. 공감의 시대. 자극적인 포장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누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세상이다. 그 가운데 는 힙합음반이기 전에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 힙합의 시각화, 생생한 영화 필름처럼
다이나믹듀오 날 것의 느낌은 간직한 채 작법과 스타일, 속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소박하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은 감성은 그야말로 섬세하다. 그의 노랫말과 멜로디에는 마치 영화 한컷한컷을 지켜보는 듯한 익숙함이 있다. 무엇보다 각 트랙의 주제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잘 짜인 옴니버스 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회색도시 속 인간의 감정’이란 주제의 틀 안에 커리어가 갖는 노련미와 집요하리만큼 디테일한 시선은 앨범테마를 더욱 와이드하게 펼쳐냈다.
바로 그런 평범한 공감, 그것들을 담아내는 과정에서도 힙합 고유의 것은 놓치지 않았다. 후반부 최자의 등장으로 기승전결의 짜릿함을 선사하는 ‘서울블루스3'를 지나 '복수의 칼2' '치명적인 비음'은 공격적인 개코의 랩을 기대했다면 최적의 트랙. 스킷에 해당하는 'Chaser the rapper'는 808드럼과 베이스만을 적절히 활용해 날 것의 느낌을 살렸다.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곡 '과거는 갔고 미래는 몰라'는 앨범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노래로, 그가 애써 꾸미지 않고 속마음을 들려주는 얘기는 사뭇 감동적이다. 작업기간 또한 가장 오래 걸린 곡이다. 여기에 앨범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개코의 보컬에 대한 운신 폭도 상당히 넓어졌다. 일렉트로닉, 붐뱁 등 여러 장르의 소화력에 변화무쌍한 콘셉트의 다양성은 짜임새 있는 완성도를 전해준다. 결국 다양한 주제 속에서도 그의 캐릭터가 겉돌지 않도록 잘 녹인 앨범이다.
특히 이 앨범이 갖는 또 다른 가치는 제대로 된 일상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많은 힙합퍼들이 미국의 것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며 뜬구름 잡는 허세만을 얘기할 때도 그는 자신의 거리에서, 생활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들을 노래에 담았다. 그래서 더 절절하게 들리며 언어유희를 통한 재치, 슬픔, 분노도 그대로 전달된다. 다이나믹듀오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확연한 선을 그었고, 그의 가치관과 재치가 곳곳에 드러나 감탄을 연발하게끔 한다.
■ 다이나믹듀오 1/2이 아닌, 개코 2/2의 음악
이러한 성질의 음악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뮤지션의 자의식과 상황, 상상력이 최상에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다. 꾸준히 고민하고 사색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성과를 얻었다. 가사의 재치와 유연한 랩에 담긴 섬세한 시선, 대중성 보다는 설득력을 짙게 드러낸 앨범이다. 즉흥적인 깨달음이라 하기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 날카로운 시각에 그만의 깊은 관찰자적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고심의 흔적이 깊다.
주목 받아야 할 중요한 부분은 정체불명의 힙합음악이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 개코는 독특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장르적인 특성을 자유롭게 담아내고 있지만 중심점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힙합음반으로 평가해선 곤란한 이유이며, 그만의 방식대로 제시한 힙합신의 또 다른 해법이다. 시대가 말하는 것을 노래에 담고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메시지의 명확한 전달, 장르의 이해, 누구나 사소하게 겪는 일상에서 새로운 답이 나왔다.
이젠 지긋지긋할 법도 한 일상의 얘기. 그 안에서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거기서 공감을 이끌어냈다. 결국 회색도시 안에서 유독 붉은 빛을 자아내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의 감정이라고 말한다. 이제 공감할 일만 남았다. 그것이 상상이든, 경험이든. 지금의 힙합이 하나의 현상이 되기까지, 수많은 실험을 거쳐온 다이나믹듀오 개코의 첫 솔로앨범. 장르의 가치와 독창성을 논하기 이전에, 이 앨범은 탁월한 스토리텔링이 전해주는 음악 그 이상의 지점에 서 있다.
[트랙별 소개]
는 애초에 개코의 솔로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작업된 앨범이 아니다. 다이나믹듀오로 활동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곡들 또는 그가 혼자서 완성하고 싶었던 곡들이 쌓이다 보니 앨범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주제 아래 고르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은 인상적이다. 다이나믹듀오의 앨범이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 곡의 이야기를 풀었다면, 이 앨범은 혼자만의 판타지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도시인 개코가 겪는 여러 감정들. 블랙과 화이트가 섞인 회색의 중립적인 영역, 모든 것을 선과 악, 흑과 백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관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남자의 관점이나 욕망, 상상은 강렬한 레드로 표현됐다.
CD 1
1. 될 대로 되라고 해 (Rhythm is life)
온전히 개코 혼자만의 열정과 영감으로 가득 채운 트랙. 라임과 플로우, 펀치라인 어느 것 하나 겉도는 걸 찾아볼 수 없다. 다이나믹듀오가 아닌, 그만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각인시킨 베스트 트랙.
2. 제정신이 아냐 (feat. Bumkey) (Passout)
도시여자의 밤 = 자유롭게 놀기 좋아하는 여자의 외로운 이면을 표현한 곡. 정작 현실은 불안정하고 소외감에 사로잡힌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냈다. 랩 파트는 다소 시끄러우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준 반면, 노래 부분에선 악기를 배제하고 범키의 목소리에 주목할 수 있게끔 대비시켰다. 기승전결의 구성이 짜릿한 재미를 주는 곡이다.
3. 서울 블루스 3 (feat. CHOIZA, DJ Soulscape, 이주한 of winterplay) (Seoul blues part3)
서울의 야경 = 개코가 자신의 올드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 마주한 서울 야경을 주제로 삼은 곡이다. DJ 소울스케이프가 참여하면서 철저히 90년대 붐뱁 느낌이 재현됐고, 기승전결식 구성이 인상적이다. 마치 드라이브를 하듯 점점 피치를 높이는 식. 후반부 등장하는 최자의 타이트한 랩과 편곡은 곡의 다이나믹한 흐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냈다.
4. 동방예의지국 (East)
주말 밤 클럽의 풍경 = 다분히 실험적이고 지극히 미래지향적인 느낌의 곡으로 흥분도를 무한 상승시킨다. 프로듀서팀 플라토닉스의 퇴폐적이고 기괴한 비트에 간결한 언어로 표현됐으며, 만취된 상태에서의 시선과 느낌을 주제로 삼았다.
5. Chaser the rapper part1
동방예의지국의 연장선상에 놓인 스킷 트랙. 평소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가 풀어내는 만취진담. 808드럼과 베이스만으로 라인을 만들어 심플하게 표현한 곡이다.
6. 세상에 (feat. DJ Friz) (Oh my god)
성형녀와 허세남의 모순적 대화 =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변해버린 성형녀와 그걸 조롱하는 남자들의 모순을 두고 물음표를 그리는 곡. 허구의 스토리를 엿보는 게 흥미롭다. 여자들이 왜 성형을 하게 됐는가. 과연 누가 조롱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안에서 드러나는 남자들의 행동들. 예를 들어 차 키를 보이는 곳에 올려놓는 과시욕 등, 이성에게 어필할려는 남자들의 욕구는 과연 성형하는 여성들과 무엇이 다른가. 결론이 아닌, 질문을 던지면서 의미를 부여한 트랙.
7. 화장 지웠어 (feat. Zion.T, HA:TFELT) (No make up)
밀당남녀의 배드엔딩 = ‘오빠, 나 화장 지웠어’란 여자들이 흔히들 하는 이 한마디에서 출발한 곡이다. 남자가 밤에 여자에게 연락했을 때 이런 말을 듣고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과정 속 상상을 그렸다.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오던 중, 남자는 뒤늦게야 여자의 마음을 알고 후회하게 되는 스토리를 담았다. 개코가 만든 소울풀한 비트위에 시모의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소스를 가미해 트랙을 완성시켰다. 핫펠트(원더걸스 예은) 자이언티 김준호 김지민 등이 피처링 참여하며 각자의 역할을 흥미롭게 표현해 냈다.
9. 은색 소나타 (feat. Crush) (Silver Sonata)
단절된 대화, 그래도 가족 = 소위 중산층이 선택하는 대표적인 자동차인 소나타, 게다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원하는 색인 은색. 고속도로를 달리는 은색 소나타 안 아버지, 어머니, 아들. 한 공간 안에 있지만 소통의 단절을 느낀다. 각자의 입장을 세 파트로 나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가장들이 겪는 소통의 부재 속 외로운 아버지, 가족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의 존재는 잃어버린 어머니, 치열한 삶 속에서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아들. 그래도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희망을 확인한다. 개코의 디테일한 시선이 돋보이는 트랙으로, 공감과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는 곡이다.
CD 2
1. 치명적인 비음 (Snapper ending)
에너지. 아주 본능적인 = '될 대로 되라고 해'가 경쾌했다면 이 노래는 다크한 에너지 안에서 풀어낸 랩곡. 모든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마음의 긍정적인 에너지 또한 존재하는데, 이 곡은 다소 어두운 주제로 풀어냈다. 비장한 분위기지만, 거창하지 않게 랩의 재미를 부각하기 위해 심플하게 만든 속 시원한 곡.
2. 복수의 칼 2 (feat. CHOIZA, Yankie, Hangzoo, Geegooin) (Mr. Vengeance part2)
절치부심 = 최자, 얀키, 리듬파워의 행주, 지구인 등 아메바컬쳐 랩드림팀이 뭉친 단체 곡. 각자의 결심을 담았다.
3. Chaser the rapper part2
복수의 칼 part2와 연결되는 스킷 트랙. 파트1과 마찬가지로 취한 상태로 풀어내는 취중진담.
4. 휑하다 (feat. Ailee) (Hueng hai)
권태기 남과 여 = 오래된 연인이 헤어지자 해놓고 서로 힘들어하는 상황을 묘사한 곡. 오래된 연인, 남자는 자신의 시간을 갖길 원하고 여자는 끝까지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생각차이를 그렸다. 깔끔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곡.
5. Festival virgin
페스티벌 관찰기 = 술에 취한 남녀, 아름다운 여성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연애행각들이 남자의 시선에서 묘사됐다. 펑키하게 상승세를 타던 곡이 후반부 스트링 변주로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는 곡이다.
7. 장미꽃 (Rose)
여자를 향한 평범하지 않은 세레나데 = 사랑하는 남자에게 맞춰가면서 자신의 색을 잃어가는 여자들을 주제로 했다. '너는 너대로 충분히 예쁘니깐 날 너무 신경 쓰지마. 친절하지 않아도 돼.’ 연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주제다. 최대한 힘을 많이 빼고 부른 개코의 보컬은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절한 긴장감과 슬픔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8. 과거는 갔고 미래는 몰라 (Shame)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 = 개코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끌어낸 자전적인 곡. 살면서 느끼는 불안정한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변해가고 싶다를 노래했고, 마음 속 얘기를 솔직하게 전하고자 했다. 앨범의 전체적인 맥락인 gray의 느낌을 잘 표현해낸 곡으로, 가장 오래 작업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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