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노트] 걸어도 걸어도
[ Intro ]
부모님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었던 어린 시절.
자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수록 마음 속 ‘가족’이라는 세계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테두리 사이, 가족과의 틈은 ‘이해’라는 단어만으로 쉽게 매워지지 않기 시작합니다.
가족이기에 누구보다 믿고 마음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나날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이기에 밝힐 수 없었던 진짜 속마음들.
이제 그 마음들을 꺼내려 합니다.
평생 가슴 속에 묻어두고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하지만 기나긴 이별을 맞이하기 전에 언젠가 한번쯤은 꼭 하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너무나 가까이 있었기에
쉬이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았던 마음
마음이 닿을 때까지
걸어도 걸어도
[ Hot Issue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년 만에
본인의 자화상을 담은 신작으로 돌아왔다!
동시대 일본 최고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하나> 이후 2년 만에 신작 <걸어도 걸어도>로 돌아왔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예측불허 사무라이의 행복한 복수극을 다룬 작품 <하나>로 처음 시대극에 도전하며 연출의 영역을 넓혔던 감독이 다시 현대로 돌아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등 매 작품마다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수채화 같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가족간 소통의 부재로 인해 야기된 현대사회의 가족 문제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디스턴스>에서 가족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도 모른다>에서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남은 이야기들을 전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근 어머니를 여의게 된 것을 계기로, 오래 전에 써두었던 가족 이야기에 관한 플롯에 자신의 자화상을 더해 <걸어도 걸어도>를 완성시켰다.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2009년 최고의 작품
<걸어도 걸어도>는 2008년 토론토영화제를 시작으로 산 세바스티안영화제, 바르샤바영화제, 런던영화제, 테살로니키영화제 등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2008년 11월 <걸어도 걸어도>는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에서 비평가상과 최고 작품상을 거머쥐며, 연이은 수상의 화려한 서막을 연다. 지난 2008년 6월 일본에서 개봉된 <걸어도 걸어도>는 그 해 말 니칸 스포츠 필름 어워드와 호치 필름 어워드의 여우조연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9년 키네마 준보 여우조연상, 마이니치 필름 어워드 남우 주연상, 블루 리본 어워드 여우조연상과 최우수 감독상까지 일본 내 주요 영화제의 6관왕을 휩쓴다. 올 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며 <걸어도 걸어도>는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로 자리매김 한다.
일본 연기파 배우들의 총집합!
완벽한 앙상블로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아무도 모른다>로 야기라 유야를 데뷔와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으며, 아사노 타다노부, 오카다 준이치 등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배우의 새로운 면을 발굴해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뽑아내는 감독의 능력은 일본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모인 <걸어도 걸어도>에서 역시 빛을 발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일본 연기파 배우들이 <걸어도 걸어도>에서 최상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트릭> 등 주로 TV 시리즈에서 개성 넘치는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아베 히로시는 <걸어도 걸어도>에서 형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한심하고 소심한 남자 ‘료타’역으로 분해 이제까지의 역할 중 가장 평범하고 소탈한 연기를 펼친다. 또한 <요시츠네>와 <결혼 못하는 남자>에 이어 아베 히로시와 세 번째로 부부 역할을 선보이는 나츠카와 유이는 전 남편과 사별하고 재혼한 며느리로서 시댁에서 겪게 되는 남모를 맘 고생을 디테일한 표정 연기로 보여준다.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에서 죽음을 앞둔 어머니 역으로 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던 키키 키린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언제나 온화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냉소적인 속마음을 감추고 사는 서늘한 어머니로 완벽하게 변신, 키네마 준보 어워드와 호치 필름 어워드, 블루 리본 어워드까지 일본 주요 영화제 여우조연상 3관왕을 석권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현장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뽑아내는 기존의 연출 방식과는 달리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철저한 리딩 연습으로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했다. 상황에 대한 감정몰입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 배우들은 각자 관계 속에서 캐릭터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통해 완벽한 앙상블을 이뤄내며 진짜 가족 같은 모습을 구현해냈다. 여기에 유, 하라다 요시오, 테라지마 스스무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호흡을 맞춰왔던 배우들이 함께 출연,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 냈다.
[ About Movie ]
가족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낸 감독의 자화상
누구나 한가지씩은 품고 있는 비밀과 거짓말, 진실과 오해
매 작품마다 사실과 허구, 중심과 주변, 그리고 삶과 죽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탁월하게 풀어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걸어도 걸어도>에서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가족간의 소통과 부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 대해 일정한 기대치를 품는다. 그러나 자식은 성장할수록 부모의 의지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부모와의 소통 부재와 갈등의 고리는 점점 깊어져만 간다.
<걸어도 걸어도>의 주인공들 역시 부모의 욕심을 제대로 채워주는 자식 하나 없다. 부모의 뜻대로 자라던 큰 아들은 사고로 죽고, 그 때문에 더욱 의사가 되었으면 했던 둘째 아들은 전남편과 사별해 아들까지 둔 여자와 결혼하고, 유일한 딸은 자신 것만 챙기기에 바쁘다. 자식들 역시 부모님이 예전만큼 편하지 않다.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체면만 중시하는 아버지, 온화해 보이지만 자식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언제부터인가 생긴 가족들 간의 틈새는 그렇게 매년 조금씩 벌어져 왔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가족간의 관계에는 틈이 생기고, 그 틈 사이에 비밀과 거짓말, 오해와 진실이 섞이게 된다.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료타가 했던 말을 준페이가 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 의사가 되기를 바랬던 아버지의 기대를 배반하며 미술 복원사가 되었기에 더욱 현재 무직인 상태를 밝힐 수 없는 료타, 엄마의 애창곡이 다름 아닌 아버지가 바람난 상대에게 불러주던 애절한 노래였다는 사실, 가족과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그 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 밖에서 놀다 들어와 어디 갔다 왔냐는 물음에 비밀이라고 말하는 어린 손주들까지. 이렇듯 누구에게나 쉽게 말 못할 비밀을 한 가지씩 간직한 채 살아온 가족들은 그 해 여름, 조금씩 변한 모습을 들춰낸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서로 간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받아들이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관계 맺고 소통해야 하는 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지 않는다. 단지 1년에 한번 제대로 꺼내어 보지도 않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오래된 앨범 같은, 그리고 인생의 오랜 비밀이자 숙제 같은 ‘가족’에의 안타까움과 낯섦에 대해 잔잔히, 그러나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료타의 추억담을 바라보는 아츠시의 시선
그 이전과 이후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드라마
<걸어도 걸어도>는 요코야마 가의 차남인 료타의 추억담으로 회상되지만, 영화는 료타의 의붓아들인 아츠시의 시선을 따라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요코야마 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찌 보면 전혀 남일 수 있는 아츠시의 시선을 통해 영화는 가장 주관적인 주제인 ‘가족’에 대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만남의 시간, 이 대화 사이에 아츠시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맨 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늦은 밤 료타와 어머니가 주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전, 아츠시는 마루에서 혼자 게임기로 오락을 하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들려오던 아츠시의 게임기 소리. 료타와 어머니가 죽은 장남의 목숨대신 살아난 요시오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숨겨왔던 진심을 털어놓는 긴장된 순간, 아츠시의 오락기 소리는 어느 샌가 사라지고 적막함만이 흐른다. 하지만 이 정적이 깨지고 별 일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올 때, 게임기 소리 역시 마치 계속 들려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렇듯 가족의 시야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아츠시가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듯 가족의 숨겨져 있던 모습들을 하나하나 비춘다.
영화는 이런 시선을 통해 태풍과 같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상황은 덮어둔 채, 사건의 이전과 이후만을 덤덤하게 바라본다. 준페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끝없는 대화로 회상하는 그가 죽기 이전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의 사고 이후 매년 기일마다 모이는 가족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 이전 유난히 특별했던 3년 전의 여름과 그 후 남은 이야기들. 영화는 완전한 가족일 수 없는 아츠시의 입장에서 바라본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 사건에 대한 이전과 이후의 시간들’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지만 그 이전의 추억과 그 이후를 견뎌낸 시간들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지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한 템포 늦게 찾아온다
그래서 더욱 아쉽고 그리운 우리네 인생을 담은 영화
지난 밤 어머니와 나누던 대화 속에서 기억해내지 못한 스모 선수를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해 낸 료타와 동시에 아들을 보내고 나서야 스모 선수의 이름을 생각해낸 어머니처럼 <걸어도 걸어도>는 언제나 한 걸음씩 늦게 깨닫게 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전한다. 그리고 자신이 놓쳐버린 그 순간이 때로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 욕실의 깨진 타일과 늙은 부모님을 위한 지지대용 손잡이가 생긴 것을 보고 가족도, 집도 늙어감을 느끼지만 아들 료타는 당장 그것들을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 왕진 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존경 받는 의사였지만, 백내장과 불편한 다리로 더 이상 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늙어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들은 측은함과 동시에 애잔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지도 않는다. 아들의 차를 타고 쇼핑하러 가는 게 꿈이라던 엄마의 작은 소원도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이뤄드리지 못한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그저 ‘그때 해드리지 못했다’라고 뒤늦은 후회만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넘길 뿐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풀지 못했던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영화 속 료타에게 투영시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스스로 ‘후회’라는 지점에서 <걸어도 걸어도>를 시작했지만, 이를 후회가 아닌 아들의 기일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가족들로 다른 때보다 더욱 왁자지껄한 하루를 보내는, 삶이 넘쳐 흐르는 영화로 만들어 냈다. 뒤늦은 후회와 미련으로 인해 슬픔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오랜 앨범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난 행복했던 시절을 보듯 아쉽고 그리운 인생의 한 순간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포착해냈다.
<걸어도 걸어도>는 비록 한 걸음 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지난 시간들 속에서 좋았던 기억들과 그리운 추억들로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래서 더욱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인생의 소소한 행복은 부드러운 슬픔이 함께 하기에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된다
죽음의 기억을 통해 새로이 삶의 기운을 찾는 산책 같은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감독이 지난 작품들을 통해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테마인 삶과 죽음의 영속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요코야마 가의 장남 준페이 외에 또 다른 죽은 이들이 등장한다. 바로 료타의 아내인 유카리의 사별한 전남편과 영화의 말미에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별세 소식을 전하는 료타의 부모님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 속에서 이들의 죽음을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 아닌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료타가 의붓아들 아츠시와 ‘죽어서 읽을 수 없는데 죽은 토끼에게 편지를 쓰자는 친구의 말이 이상해서 웃었다’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죽음=끝’이라 생각하는 아츠시를 스치듯 보여준다. 하지만 아츠시는 준페이의 기일을 보내는 동안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들을 하며, 죽음이 곧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 역시 (아츠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늘 가슴 속에 살아있다’고 귀뜸 해주는 엄마의 말에 아츠시는 늦은 밤 홀로 하늘을 바라보며 돌아가신 친아빠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전한다.
오랜만에 모인 자리를 기념하려 가족 사진을 찍으려 할 때 준페이의 사진을 들고 나서며 ‘그래도 이 아이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또 모였잖니’라고 말하는 어머니, 여전히 형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료타, 그리고 아들의 목숨 대신 살아남은 요시오에 대한 부모님의 원망과 분노… 요코야마 가의 장남 준페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가족들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화의 말미,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랑 나비를 보며 료타는 수년 전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딸에게 그대로 들려준다. 감독은 그 구성원은 바뀌었지만 죽은 이의 산소를 찾는 가족들을 담은 시퀀스를 반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된다’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이미 세상을 떠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새로 맞이한 가족들의 가슴 속에서 따스한 시간들을 보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Production Note ]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리움과 후회로 만들게 된 작품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아닌, 어머니와 함께 다시 웃고 싶었다”
6-7년 전 가족 이야기에 관한 플롯을 썼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하지만 당시에는 가족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 플롯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를 잃고 난 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입원해있던 병원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대화들 속에서 다시 떠올리게 된 옛날 이야기들, 그리고 지난 추억 속 어머니의 모습들을 영상의 형태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모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가족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로 결심한 지 한달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선다. <걸어도 걸어도>는 감독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만든 영화이기에, 본인 어머니의 성격과 말투를 토대로 주인공 어머니 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사의 대부분 역시 실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머니께서 늘 자신에게 하시던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요리가 그대로 영화 속에 차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걸어도 걸어도>는 슬픔이 아닌 어머니와 다시 웃길 원했던 고레에다 식 인생 레시피가 담긴 영화로 완성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단이 다시 뭉쳤다!
프로덕션 디자인부터 촬영, 의상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영화
감독, 각본, 편집까지 1인 3역을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다시 한번 ‘고레에다 사단’과 뭉쳤다. 2001년 <디스턴스>를 시작으로 2004년 <아무도 모른다>, 2006년 <하나>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해온 촬영 감독 야마자키 유타카 YAMAZAKI Yutaka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이소미 유야 ISOMI Yuya가 <걸어도 걸어도>에도 참여, 완벽에 가까운 세트와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환상의 빛>,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걸어도 걸어도> 역시 대부분의 장면들이 집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던 집안 구성을 욕실의 깨진 타일부터 다락방의 조이 디비젼의 포스터까지, 이소미 유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본인의 실제 경험에서 가져온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살려내며 고향의 낡은 집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하는 완벽한 세트를 만들어 냈다.
이를 야마자키 유타카 촬영감독이 작은 프레임 속에 구석구석 담아냈다. 특히 좁은 공간 내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집안 내에서는 절제된 샷으로 구성, 대부분의 컷을 짧게 촬영했으며 클로즈업 장면을 적극 활용해 비교적 느슨한 전개가 지루하지 않도록 속도감을 더했다. 푸른 숲과 바다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야외 장면에서는 집안에서와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긴 롱테이크를 사용, 전반적으로 화면 가득 풍경을 담는 풀 샷을 활용해 여름이지만 시원시원한 느낌의 화면을 구현해냈다.
또한 <하나> 때부터 고레에다 사단에 합류한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딸, 구로사와 카즈코 역시 <걸어도 걸어도>에서 너무 튀지 않지만 지나치게 수수하지도 않은, 우리의 일상 속 의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Tip. 누구나 몰래 듣는 노래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토시코 요코하마’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 료타가 아직 아기였던 시절, 남편의 바람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토시코는 늦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던 남편을 찾아 나선다. 애써 찾아낸 그곳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에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불러주던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토시코는 문 밖에서 남편을 불러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길, 레코드 가게에 들러 [블로 라이트 요코하마]가 담긴 LP판을 하나 산다. 그렇게 토시코의 마음에 애증으로 남은 노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오랜 세월 그녀의 가슴 절절한 18번이 된다.
街の灯りが とてもきれいね 거리의 불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あなたとふたり 幸せよ 당신과 둘이서 행복해요
いつものように 愛の言葉を 언제나처럼 사랑의 이야기를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私にください あなたから 내게 주세요. 당신에게서
歩いても歩いても 小舟のように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私はゆれて ゆれてあなたの胸の中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당신 품 안에
足音だけが ついて来るのよ 발자국 소리만 따라 오네요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やさしいくちづけ もう一度 부드러운 입맞춤 다시 한번
歩いても歩いても 小舟のように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私はゆれて ゆれてあなたの胸の中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당신 품 안에
あなたの好きな タバコの香り 당신이 좋아하는 담배 향기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二人の世界 いつまでも 둘 만의 세계 언제까지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이시다 아유미 Ishida Ayumi의 곡이다. 1968년 12월에 발매되어 오리콘 챠트에 9주 연속 1위를 차지, 100만 매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넘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곡으로, 1970년대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한국에 가장 알려진 일본 노래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었던 어린 시절.
자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수록 마음 속 ‘가족’이라는 세계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테두리 사이, 가족과의 틈은 ‘이해’라는 단어만으로 쉽게 매워지지 않기 시작합니다.
가족이기에 누구보다 믿고 마음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나날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이기에 밝힐 수 없었던 진짜 속마음들.
이제 그 마음들을 꺼내려 합니다.
평생 가슴 속에 묻어두고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하지만 기나긴 이별을 맞이하기 전에 언젠가 한번쯤은 꼭 하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너무나 가까이 있었기에
쉬이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았던 마음
마음이 닿을 때까지
걸어도 걸어도
[ Hot Issue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년 만에
본인의 자화상을 담은 신작으로 돌아왔다!
동시대 일본 최고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하나> 이후 2년 만에 신작 <걸어도 걸어도>로 돌아왔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예측불허 사무라이의 행복한 복수극을 다룬 작품 <하나>로 처음 시대극에 도전하며 연출의 영역을 넓혔던 감독이 다시 현대로 돌아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등 매 작품마다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수채화 같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가족간 소통의 부재로 인해 야기된 현대사회의 가족 문제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디스턴스>에서 가족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도 모른다>에서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남은 이야기들을 전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근 어머니를 여의게 된 것을 계기로, 오래 전에 써두었던 가족 이야기에 관한 플롯에 자신의 자화상을 더해 <걸어도 걸어도>를 완성시켰다.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2009년 최고의 작품
<걸어도 걸어도>는 2008년 토론토영화제를 시작으로 산 세바스티안영화제, 바르샤바영화제, 런던영화제, 테살로니키영화제 등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2008년 11월 <걸어도 걸어도>는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에서 비평가상과 최고 작품상을 거머쥐며, 연이은 수상의 화려한 서막을 연다. 지난 2008년 6월 일본에서 개봉된 <걸어도 걸어도>는 그 해 말 니칸 스포츠 필름 어워드와 호치 필름 어워드의 여우조연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9년 키네마 준보 여우조연상, 마이니치 필름 어워드 남우 주연상, 블루 리본 어워드 여우조연상과 최우수 감독상까지 일본 내 주요 영화제의 6관왕을 휩쓴다. 올 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며 <걸어도 걸어도>는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로 자리매김 한다.
일본 연기파 배우들의 총집합!
완벽한 앙상블로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아무도 모른다>로 야기라 유야를 데뷔와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으며, 아사노 타다노부, 오카다 준이치 등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배우의 새로운 면을 발굴해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뽑아내는 감독의 능력은 일본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모인 <걸어도 걸어도>에서 역시 빛을 발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일본 연기파 배우들이 <걸어도 걸어도>에서 최상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트릭> 등 주로 TV 시리즈에서 개성 넘치는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아베 히로시는 <걸어도 걸어도>에서 형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한심하고 소심한 남자 ‘료타’역으로 분해 이제까지의 역할 중 가장 평범하고 소탈한 연기를 펼친다. 또한 <요시츠네>와 <결혼 못하는 남자>에 이어 아베 히로시와 세 번째로 부부 역할을 선보이는 나츠카와 유이는 전 남편과 사별하고 재혼한 며느리로서 시댁에서 겪게 되는 남모를 맘 고생을 디테일한 표정 연기로 보여준다.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에서 죽음을 앞둔 어머니 역으로 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던 키키 키린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언제나 온화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냉소적인 속마음을 감추고 사는 서늘한 어머니로 완벽하게 변신, 키네마 준보 어워드와 호치 필름 어워드, 블루 리본 어워드까지 일본 주요 영화제 여우조연상 3관왕을 석권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현장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뽑아내는 기존의 연출 방식과는 달리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철저한 리딩 연습으로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했다. 상황에 대한 감정몰입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 배우들은 각자 관계 속에서 캐릭터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통해 완벽한 앙상블을 이뤄내며 진짜 가족 같은 모습을 구현해냈다. 여기에 유, 하라다 요시오, 테라지마 스스무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호흡을 맞춰왔던 배우들이 함께 출연,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 냈다.
[ About Movie ]
가족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낸 감독의 자화상
누구나 한가지씩은 품고 있는 비밀과 거짓말, 진실과 오해
매 작품마다 사실과 허구, 중심과 주변, 그리고 삶과 죽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탁월하게 풀어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걸어도 걸어도>에서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가족간의 소통과 부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 대해 일정한 기대치를 품는다. 그러나 자식은 성장할수록 부모의 의지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부모와의 소통 부재와 갈등의 고리는 점점 깊어져만 간다.
<걸어도 걸어도>의 주인공들 역시 부모의 욕심을 제대로 채워주는 자식 하나 없다. 부모의 뜻대로 자라던 큰 아들은 사고로 죽고, 그 때문에 더욱 의사가 되었으면 했던 둘째 아들은 전남편과 사별해 아들까지 둔 여자와 결혼하고, 유일한 딸은 자신 것만 챙기기에 바쁘다. 자식들 역시 부모님이 예전만큼 편하지 않다.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체면만 중시하는 아버지, 온화해 보이지만 자식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언제부터인가 생긴 가족들 간의 틈새는 그렇게 매년 조금씩 벌어져 왔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가족간의 관계에는 틈이 생기고, 그 틈 사이에 비밀과 거짓말, 오해와 진실이 섞이게 된다.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료타가 했던 말을 준페이가 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 의사가 되기를 바랬던 아버지의 기대를 배반하며 미술 복원사가 되었기에 더욱 현재 무직인 상태를 밝힐 수 없는 료타, 엄마의 애창곡이 다름 아닌 아버지가 바람난 상대에게 불러주던 애절한 노래였다는 사실, 가족과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그 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 밖에서 놀다 들어와 어디 갔다 왔냐는 물음에 비밀이라고 말하는 어린 손주들까지. 이렇듯 누구에게나 쉽게 말 못할 비밀을 한 가지씩 간직한 채 살아온 가족들은 그 해 여름, 조금씩 변한 모습을 들춰낸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서로 간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받아들이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관계 맺고 소통해야 하는 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지 않는다. 단지 1년에 한번 제대로 꺼내어 보지도 않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오래된 앨범 같은, 그리고 인생의 오랜 비밀이자 숙제 같은 ‘가족’에의 안타까움과 낯섦에 대해 잔잔히, 그러나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료타의 추억담을 바라보는 아츠시의 시선
그 이전과 이후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드라마
<걸어도 걸어도>는 요코야마 가의 차남인 료타의 추억담으로 회상되지만, 영화는 료타의 의붓아들인 아츠시의 시선을 따라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요코야마 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찌 보면 전혀 남일 수 있는 아츠시의 시선을 통해 영화는 가장 주관적인 주제인 ‘가족’에 대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만남의 시간, 이 대화 사이에 아츠시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맨 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늦은 밤 료타와 어머니가 주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전, 아츠시는 마루에서 혼자 게임기로 오락을 하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들려오던 아츠시의 게임기 소리. 료타와 어머니가 죽은 장남의 목숨대신 살아난 요시오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숨겨왔던 진심을 털어놓는 긴장된 순간, 아츠시의 오락기 소리는 어느 샌가 사라지고 적막함만이 흐른다. 하지만 이 정적이 깨지고 별 일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올 때, 게임기 소리 역시 마치 계속 들려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렇듯 가족의 시야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아츠시가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듯 가족의 숨겨져 있던 모습들을 하나하나 비춘다.
영화는 이런 시선을 통해 태풍과 같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상황은 덮어둔 채, 사건의 이전과 이후만을 덤덤하게 바라본다. 준페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끝없는 대화로 회상하는 그가 죽기 이전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의 사고 이후 매년 기일마다 모이는 가족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 이전 유난히 특별했던 3년 전의 여름과 그 후 남은 이야기들. 영화는 완전한 가족일 수 없는 아츠시의 입장에서 바라본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 사건에 대한 이전과 이후의 시간들’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지만 그 이전의 추억과 그 이후를 견뎌낸 시간들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지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한 템포 늦게 찾아온다
그래서 더욱 아쉽고 그리운 우리네 인생을 담은 영화
지난 밤 어머니와 나누던 대화 속에서 기억해내지 못한 스모 선수를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해 낸 료타와 동시에 아들을 보내고 나서야 스모 선수의 이름을 생각해낸 어머니처럼 <걸어도 걸어도>는 언제나 한 걸음씩 늦게 깨닫게 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전한다. 그리고 자신이 놓쳐버린 그 순간이 때로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 욕실의 깨진 타일과 늙은 부모님을 위한 지지대용 손잡이가 생긴 것을 보고 가족도, 집도 늙어감을 느끼지만 아들 료타는 당장 그것들을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 왕진 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존경 받는 의사였지만, 백내장과 불편한 다리로 더 이상 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늙어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들은 측은함과 동시에 애잔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지도 않는다. 아들의 차를 타고 쇼핑하러 가는 게 꿈이라던 엄마의 작은 소원도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이뤄드리지 못한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그저 ‘그때 해드리지 못했다’라고 뒤늦은 후회만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넘길 뿐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풀지 못했던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영화 속 료타에게 투영시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스스로 ‘후회’라는 지점에서 <걸어도 걸어도>를 시작했지만, 이를 후회가 아닌 아들의 기일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가족들로 다른 때보다 더욱 왁자지껄한 하루를 보내는, 삶이 넘쳐 흐르는 영화로 만들어 냈다. 뒤늦은 후회와 미련으로 인해 슬픔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오랜 앨범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난 행복했던 시절을 보듯 아쉽고 그리운 인생의 한 순간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포착해냈다.
<걸어도 걸어도>는 비록 한 걸음 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지난 시간들 속에서 좋았던 기억들과 그리운 추억들로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래서 더욱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인생의 소소한 행복은 부드러운 슬픔이 함께 하기에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된다
죽음의 기억을 통해 새로이 삶의 기운을 찾는 산책 같은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감독이 지난 작품들을 통해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테마인 삶과 죽음의 영속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요코야마 가의 장남 준페이 외에 또 다른 죽은 이들이 등장한다. 바로 료타의 아내인 유카리의 사별한 전남편과 영화의 말미에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별세 소식을 전하는 료타의 부모님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 속에서 이들의 죽음을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 아닌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료타가 의붓아들 아츠시와 ‘죽어서 읽을 수 없는데 죽은 토끼에게 편지를 쓰자는 친구의 말이 이상해서 웃었다’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죽음=끝’이라 생각하는 아츠시를 스치듯 보여준다. 하지만 아츠시는 준페이의 기일을 보내는 동안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들을 하며, 죽음이 곧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 역시 (아츠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늘 가슴 속에 살아있다’고 귀뜸 해주는 엄마의 말에 아츠시는 늦은 밤 홀로 하늘을 바라보며 돌아가신 친아빠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전한다.
오랜만에 모인 자리를 기념하려 가족 사진을 찍으려 할 때 준페이의 사진을 들고 나서며 ‘그래도 이 아이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또 모였잖니’라고 말하는 어머니, 여전히 형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료타, 그리고 아들의 목숨 대신 살아남은 요시오에 대한 부모님의 원망과 분노… 요코야마 가의 장남 준페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가족들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화의 말미,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랑 나비를 보며 료타는 수년 전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딸에게 그대로 들려준다. 감독은 그 구성원은 바뀌었지만 죽은 이의 산소를 찾는 가족들을 담은 시퀀스를 반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된다’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이미 세상을 떠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새로 맞이한 가족들의 가슴 속에서 따스한 시간들을 보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Production Note ]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리움과 후회로 만들게 된 작품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아닌, 어머니와 함께 다시 웃고 싶었다”
6-7년 전 가족 이야기에 관한 플롯을 썼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하지만 당시에는 가족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 플롯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를 잃고 난 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입원해있던 병원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대화들 속에서 다시 떠올리게 된 옛날 이야기들, 그리고 지난 추억 속 어머니의 모습들을 영상의 형태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모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가족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로 결심한 지 한달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선다. <걸어도 걸어도>는 감독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만든 영화이기에, 본인 어머니의 성격과 말투를 토대로 주인공 어머니 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사의 대부분 역시 실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머니께서 늘 자신에게 하시던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요리가 그대로 영화 속에 차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걸어도 걸어도>는 슬픔이 아닌 어머니와 다시 웃길 원했던 고레에다 식 인생 레시피가 담긴 영화로 완성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단이 다시 뭉쳤다!
프로덕션 디자인부터 촬영, 의상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영화
감독, 각본, 편집까지 1인 3역을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다시 한번 ‘고레에다 사단’과 뭉쳤다. 2001년 <디스턴스>를 시작으로 2004년 <아무도 모른다>, 2006년 <하나>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해온 촬영 감독 야마자키 유타카 YAMAZAKI Yutaka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이소미 유야 ISOMI Yuya가 <걸어도 걸어도>에도 참여, 완벽에 가까운 세트와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환상의 빛>,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걸어도 걸어도> 역시 대부분의 장면들이 집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던 집안 구성을 욕실의 깨진 타일부터 다락방의 조이 디비젼의 포스터까지, 이소미 유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본인의 실제 경험에서 가져온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살려내며 고향의 낡은 집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하는 완벽한 세트를 만들어 냈다.
이를 야마자키 유타카 촬영감독이 작은 프레임 속에 구석구석 담아냈다. 특히 좁은 공간 내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집안 내에서는 절제된 샷으로 구성, 대부분의 컷을 짧게 촬영했으며 클로즈업 장면을 적극 활용해 비교적 느슨한 전개가 지루하지 않도록 속도감을 더했다. 푸른 숲과 바다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야외 장면에서는 집안에서와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긴 롱테이크를 사용, 전반적으로 화면 가득 풍경을 담는 풀 샷을 활용해 여름이지만 시원시원한 느낌의 화면을 구현해냈다.
또한 <하나> 때부터 고레에다 사단에 합류한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딸, 구로사와 카즈코 역시 <걸어도 걸어도>에서 너무 튀지 않지만 지나치게 수수하지도 않은, 우리의 일상 속 의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Tip. 누구나 몰래 듣는 노래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토시코 요코하마’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 료타가 아직 아기였던 시절, 남편의 바람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토시코는 늦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던 남편을 찾아 나선다. 애써 찾아낸 그곳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에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불러주던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토시코는 문 밖에서 남편을 불러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길, 레코드 가게에 들러 [블로 라이트 요코하마]가 담긴 LP판을 하나 산다. 그렇게 토시코의 마음에 애증으로 남은 노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오랜 세월 그녀의 가슴 절절한 18번이 된다.
街の灯りが とてもきれいね 거리의 불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あなたとふたり 幸せよ 당신과 둘이서 행복해요
いつものように 愛の言葉を 언제나처럼 사랑의 이야기를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私にください あなたから 내게 주세요. 당신에게서
歩いても歩いても 小舟のように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私はゆれて ゆれてあなたの胸の中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당신 품 안에
足音だけが ついて来るのよ 발자국 소리만 따라 오네요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やさしいくちづけ もう一度 부드러운 입맞춤 다시 한번
歩いても歩いても 小舟のように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私はゆれて ゆれてあなたの胸の中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당신 품 안에
あなたの好きな タバコの香り 당신이 좋아하는 담배 향기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二人の世界 いつまでも 둘 만의 세계 언제까지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이시다 아유미 Ishida Ayumi의 곡이다. 1968년 12월에 발매되어 오리콘 챠트에 9주 연속 1위를 차지, 100만 매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넘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곡으로, 1970년대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한국에 가장 알려진 일본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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